나의 커피 생활

전공의 시절 보통의 아침은 공복 상태였고, 긴장과 스트레스로 시작했다. 그 전날 당직이라도 섰었다면, 피로감과 집중력 저하는 덤이었다. 이럴 때 아이스라떼는 적당량의 카페인과 칼로리, 얼음이 들어 있어서 최적의 음료였다. 그렇게 수년간 같은 커피만 마시다가, 지금의 병원으로 이직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 근처에 오래된 로스터리 카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제나 그렇듯 별거 아닌 일에도 처음 시작엔 용기가 필요한데, 마침 어느날 용기를 내어 카페에서 원두를 구입했다. 처음엔 분쇄된 커피를 사다가 핸드드립으로 만들었고, 몇 달 후엔 그라인더를 구매하여 분쇄하지 않은 홀빈을 갈아서 먹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지금은 생두를 로스팅 하기 시작했다. 이 글은 커피를 만들어 먹는 소소한 커피 생활에 대한 나의 이야기이다.

(1) 생두


커피 열매의 빨간 껍질을 까고, 알맹이를 말린 것을 생두라고 한다. 바짝 건조된 상태로 산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운반한다. 생두에는 아직 풀의 느낌이 강하다. 푸르스름하고 먼지가 묻어 있고, 꿉꿉한 냄새가 난다. 처음 봉투를 열면, 과연 이것이 향긋하고 쌉쏘름한 커피가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집에서 로스팅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단위로 소분하여 온라인 판매하는 업체에서 생두를 구매를 하고 있다. 생두를 구매해서 커피를 만들어 먹으면, 같은 양의 원두를 구매할 때 보다 매우 저렴하고,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로스팅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롭다는 단점은 감수해야 한다.


(2) 로스팅


말린 옥수수에 열을 가하면 모양과 맛이 달라져 팝콘이 된다. 마찬가지로 생두에 열을 가하면 향과 맛이 변한다. 열을 가하는 동안 커피의 성질은 시시각각 달라지는데, 실력있는 바리스타는 여러 조건들을 조정해서 생두가 가진 장점을 끌어낼 수 있다. 로스터기의 종류와 가격은 매우 다양한데, 내가 사용하는 수망로스터는 단순한 ‘체’ 처럼 생긴 도구이다. 그저 체에 생두를 올려 놓고 가스불 위에서 휘이휘이 돌려가며, 커피가 타지 않도록 볶아주면 된다. 열을 가하는 동안 카키색이던 생두는 노랗게 변하고, 점점 갈색으로 변해간다. 어느정도 열을 흡수하면 생두는 내부의 수분이 팽창하면서 크기가 점점 커진다. 커피 알갱이가 수분의 팽창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순간 팝콘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 여기저기서 ‘딱,딱,따악,딱’ 터지는 한바탕 요란한 소동 (1차 팝)이 지나고 나면, 다시 잠잠해지면서 2차 변화를 겪는다. 커피 내부의 셀룰로즈 구조에 변화가 오고 여러가지 화학적 변화들이 일어나 커피 특유의 맛이 생기는 과정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옛날 시골 할머니댁 아궁이 속에서 나뭇가지가 탈 때 나는 것 처럼, ‘따다닥,딱따닥’ 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지금 부터가 선택의 시간인데, 언제 불을 끄느냐에 따라 커피의 맛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머뭇거리다가 불 끄는 타이밍을 놓치면, 커피는 쓴 맛이 강해지고 본연의 향은 사라져 버린다. 커피가 탈까봐 너무 일찍 중단해 버리면, 텁텁한 풀맛이 남게 된다. 커피를 볶은 정도에 따라, 시나몬-미디엄-시티-풀시티-프렌치-이탈리안 으로 표현한다.

(3) 드립


갓 볶은 커피는 바로 먹기 보다는 몇일 정도 기다린 후에 먹는 것이 좋다. 덜 볶을수록 좀더 오래 기다리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원두를 갈기 위해 핸드밀을 사용하고 있는데, 모 커피 광고에서 멋진 남자 배우가 여유롭게 커피를 가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서, 바쁜 아침에 커피를 먹고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빠른 손놀림이 필요하다. 커피 가루의 분쇄 정도에 따라 커피 맛이 또 달라지는데, 곱게 분쇄할수록 드립할 때 커피와 물이 닿는 시간이 길어 지게 되어, 커피 맛이 써지고, 원치 않는 여러가지 맛도 섞여 나온다. 커피에 붓는 물의 온도는 92도가 적당하다고 하는데, 온도계로 측정하지 않는 이상 알수가 없다. 그저, 펄펄 끓는 물을 바로 사용하면, 쓴 맛이 강해지고 잡스러운 맛이 녹아 나온다고 하니 좋지 않다고 한다. 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이 닿으면 커피 내부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어 거품이 올라오면서, 카스테라 빵의 표면처럼 부풀어 오른다. 커피 가루 구석구석에 물이 잘 닿을 수 있도록 원형으로 돌려가며 천천히 물을 부어 준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데는 2분을 넘지 않도록 한다.


(4) 마시기


개인의 취향이지만, 나는 커피를 마시는 데에 두꺼운 머그잔 보다는 얇은 커피잔이 좋은 것 같다. 씁쓸한 커피는 달콤한 빵이나 디저트와 먹어도 좋지만, 맛있게 만든 커피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다채롭고 화려한 맛과 향을 낸다. 여러 조건에 따라 커피의 맛이 많이 달라지다 보니, 내가 원하는 맛을 내는 경우는 20-30% 정도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실망스러운 경우이다. 게다가 커피 볶을 때 생기는 미세먼지와 찌꺼기들을 치우는 일은 분명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가끔 뜻밖의 커피 맛에 감동할 때가 있어, 이 번거로운 일을 멈추지 않는 것 같다. 오늘도 그런 희망을 가지고 커피를 만든다.

강원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최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