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기록 마흔의 인연” 전두엽손상 1st EP

안녕하십니까. 세브란스병원 내과 신동엽입니다.

이번에 새롭게 학회 홍보위원회 간사를 맡게 된 관계로 남기현 홍보 이사님 및 여러 위원님들께서 특혜를 주신 것 같기도 하지만, 이렇게 모든 회원 선생님들께 벌써(?) 2년 전에 발매한 음악 앨범 이야기를 공유 드릴 수 있어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서른의 기록 마흔의 인연”, 전두엽손상 1st EP

술 취한 뒤 이성이 억제되고 죽어있던 감성이 되살아난다.

현직 의사 두 명(신동엽, 김광준)으로 구성된 전두엽손상의 첫 번째 EP는 지난 십 년간 같은 병원에서 삼십대를 보내며 지어낸 네 곡의 노래를 담았으며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포스티노를 비롯하여 양태경, 조정치 등 정상급 뮤지션의 편곡으로 완성되었다.

음원 사이트에 제출한 앨범 소개 글에 적은 내용인데, 이에 대한 내용으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개인적으로 음악에 대한 취미가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90년대는 노래방도 많았고 길거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포함해 지금보다 뭔가 좀 더 주위에 음악이 흘러 넘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철 없던 시절이지만 학생 때 친구와 같이 작곡한 곡을 가지고 기획사 오디션을 보았던 추억도 있고 제작자 한 분을 만나 음반을 취입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한 이후 음악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려보면, 지인들의 결혼식 축가, 교수님들의 퇴임식, 동창회 등 연말 행사에서 아마추어 장기 자랑 형식으로 노래를 할 기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쑥스럽기도 하지만 코로나로 이런 문화 자체가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여겨지는 상황이라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새삼 아련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느껴집니다. 지금은 음악 유튜브 “얘들아 안녕 음악의 삼촌 태경이 삼촌이야”로 활동 중이고 이번 앨범에도 큰 도움을 준 피아니스트 양태경이 그 당시 매번 재능 기부로 함께 도와주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2013년 연세의대 내과학교실 송년 행사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양태경과 함께.

이번 앨범의 직접적인 출발점은 같은 병원 내분비내과 후배인 김광준 교수(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와 2011년에 만들었던 ‘내려놓자’라는 곡입니다. 십년 전 저희 나름대로 전두엽손상의 프로젝트가 시작된 의미 있는 곡으로 가정불화를 극복하고자 김광준 교수가 아내에게 지어 선물한 곡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바빴던 김교수가 잦은 음주와 늦은 귀가로 당시 사이가 안 좋아졌던 아내의 생일을 맞아 화해와 사죄의 의미로 쓴 시에 제가 곡을 붙여서 김교수가 노래한 음원 CD를 제작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미혼이었고 부부 사이의 감정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제가 쓴 곡에 김교수 내외가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모습에 매우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십년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습니다.

십년 만에 다시 ‘내려놓자’ 이야기가 나온 것은 어쩌면 코로나19의 영향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2020년 4월 20일 코로나 사태로 갑자기 대부분의 저녁 일정이 취소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퇴근길 병원 앞 버스 정류장에서 김교수를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자고 해서 들어간 식당에서 ‘내려놓자’라는 곡을 더 늦기 전에 한번 다시 정식으로 발표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직접 노래를 부를 생각은 하지 않았고 기성 가수와 편곡자를 섭외해서 음원 사이트에 디지털 싱글 형식으로 발표하는 계획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두 달여 동안 다양한 루트로 음원 제작과 관련하여 가수와 프로듀서 섭외를 진행했는데 여러가지 실무적인 조건에서 생각보다 담당자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예전에 김교수와 주고 받았던 이메일 목록에서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던 ‘몰아낸다’라는 곡이 추가로 발견됐고 당시 김교수가 일기처럼 적었던 메모 들 중에서 주로 ‘음주’와 관련된 가사를 추가로 저에게 보내주어서 새로 두 곡 (‘똑똑뚝뚝’, ‘Insomnia’)을 써서 총 네 곡의 데모가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곡 수도 많아지고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 저희 둘이 음원 제작을 진행하기는 무리라고 생각이 되는 시점에서, 결국 다시 생각난 것이 양태경과 그의 친구인 ‘포스티노’였습니다.

포스티노는 크게 히트한 윤종신의 ‘좋니’라는 곡의 작곡가인데 오래 전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이미 크게 유명해져서 저희 같은 아마추어들의 곡을 맡아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한번 자문이라도 받고 싶은 생각에 정말 오랜만에 연락해서 자리를 가졌고, 곡을 전달받고 며칠 뒤에 포스티노로부터 정식으로 프로듀싱을 맡겠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조건이 하나 있었는데 제가 직접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보컬 녹음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는 포스티노의 지휘 아래 전체적인 제작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이 되었고 10월에 노래 녹음이 진행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아주 오랜만에 마치 학생 같은 입장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으로 보컬 디렉팅(directing)을 받으면서 제 자신도 배우는 점이 있었고 왠지 모를 정서적인 힐링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녹음실에서

전두엽손상 앨범은 2020년 12월 1일 미러볼뮤직을 통해서 정식으로 발매가 되었고 유튜브나 멜론, 벅스, 지니 등 각종 음원사이트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전혀 관계없을 것 같았던 오래된 인연들이 음악으로 연결되는 것에서 제 의지를 넘어서는 어떤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제작 과정이었습니다.

말을 하고 글을 쓰듯이 개인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누군가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광준 교수에게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하며 귀중한 지면을 할애하여 본 앨범 제작기를 소개해드릴 수 있게 기회를 주신 학회 측에도 크게 감사를 드리고 끝으로 음악을 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로 커다란 감사를 드립니다.

세브란스병원 내과 신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