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 체류기

국립중앙의료원 내분비대사내과

임 정 아

  저는 국립중앙의료원 내분비대사내과 임정아입니다. 제가 2021년 8월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UCSD)로 해외연수를 오게 된 지가 벌써 5개월이 다 되갑니다. 해외연수 체류기 원고를 청탁 받고 어떤 내용을 써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는데, 제가 처음 겪었던 시행착오를 되돌아보니 앞으로 연수를 떠나실 계획이 있는 선생님들께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께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는 하지만 저의 연수 이전의 준비과정부터 도착 후 정착과정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이미 장기 해외 연수를 다녀오셨던 여러 선생님들이 San Diego를 강력히 추천하셔서 저도 San Diego로 연수를 갔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지만 적절한 연수지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의 남편도 역시 장기 해외 연수를 같은 시기에 가기로 하여 남편의 연수지도 함께 고려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도 제 남편이 가고 싶었던 연구실의 Boss께서 원래 계셨던 Bringham and Women’s Hospital에서 UCSD로 옮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이미 그 곳에 연수를 다녀오셨던 선배님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San Diego 로 연수지를 먼저 결정하게 되었고 저는 이제는 반드시 San Diego에 있는 연수지를 찾아야하는 절박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UCSD의 Moore’s Cancer Center에 암의 유전체 분석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는 연구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곳은 저의 주 연구분야인 갑상선암의 유전체 분석과도 관련이 있어 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지만 그 전에 교류가 없던 연구실이라서 선뜻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구실에 있던 교수님 중 한 분이 Washington University의 종양내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제 오랜 친구와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친구의 소개로 정말 운이 좋게도 UCSD의 Moore’s Cancer Center에서 연수를 승낙받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UCSD에서 COVID-19 대유행 때문에 visiting scholar를 받는 데에 많은 제약이 있어 비자를 받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출발하기 1달전쯤 비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San Diego 북쪽에 위치한 Carmel Valley 라는 지역인데, 이곳은 한국에서 연수 오신 의대 교수님 대부분이 살고 계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정착지입니다. 저 또한 이전에 San Diego에 연수 다녀오셨던 선생님들께 워낙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Carmel Valley를 저의 정착지로 결정하였습니다. 원래 이렇게 유명한 곳에는 항상 연수를 들어오는 분들과 나가는 분들이 있어 moving sale을 통해 서로 집이나 살림살이 등을 주고받아서 연수 초기 정착 시기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으나 제가 연수를 떠날 즈음에는 COVID-19 대유행으로 인해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시는 선생님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이전에 오셨던 선생님을 소개받아 집과 살림살이를 다 물려받기로 하였지만 저와 비슷한 시기에 연수를 오신 분들 중에는 집을 구하고 살림살이를 마련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집 다음으로 큰 마음의 부담이 되는 것이 자동차인데 이것 역시 집을 물려주신 선생님께 한국인 중고차 딜러를 소개받아서 미국에 가기 전에 차를 이미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일면식도 없는 중고차 딜러분께 수만 달러에 이르는 자동차 값을 자동차의 상태도 확인하지 않고 입금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소개해 주신 선생님께서 본인 차량을 그 딜러분께 만족스럽게 구매해서 사용하고 다시 그 분께 팔고 가신다는 점, 당시 미국 중고차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하고 있었던 중이라서 하루라도 빨리 계약을 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될 것 같다는 점, 그리고 미국에 입국할 때 자동차 구매를 위해 고액의 현금을 갖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을 고려해서 한국에서 미리 차량을 구매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저희 차는 조금 오래되기는 하였지만 상태가 양호하였고 가격도 시세에 비해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운 좋게도 만족스러운 거래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출발 전에 부담스러운 부분을 모두 해결하게 되어 마음이 한결 편했습니다. 제가 정착 도우미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고 San Diego에 스스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집과 차가 미리 해결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입국한 날짜는 아이들 학교 개학하기 2주 전이었습니다. 첫 1주간은 핸드폰, 은행계좌, 인터넷 등을 계약하고 여기저기 마트를 다니며 생활에 필요한 것을 사느라 돌아다녔습니다. 개학1주 전에는 아이들이 적응시간도 가질 겸 썸머캠프도 신청하여 참가하였는데 오전 9시부터 오후3시까지 애들이 캠프가 있는 동안 저희가 해결할 일들을 하러 돌아다닐 수 있어서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미국에 오기전에 어른들 뿐 만 아니라 아이들도 영어공부를 가능한 많이 하고 오는 것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영어를 잘 할수록 새로운 학교에서의 적응이 더 쉬울 뿐만 아니라, 1~2년이라는 기간은 영어 실력을 늘리기에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에 미리 영어 준비를 가능한 많이 해오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미국 연수를 오셨던 많은 선생님들께서 미국에서는 DMV를 경험해봐야 진짜 미국에 정착했다고 할 수 있다고 하시더니, 그 말씀이 어떤 뜻인지 저도 몸소 느끼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미국에 온지 3주만에 운전면허시험을 한 번에 통과했는데 저는 우여곡절 끝에 3번만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정말 case by case인지라 면허를 저보다 2달이나 일찍 딴 남편이나 저나 운전면허증은 거의 같은 시기에 받았습니다. 운전면허증을 받게 되면 이제 거의 정착을 다 한 것이라고 들었는데 저도 면허증을 받게 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Moore’s Cancer Center는 COVID-19 여파로 아직도 주로 재택근무를 하고 화상회의를 많이 합니다. 재택근무가 편하기도 하지만 직접 만나서 연구나 회의를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UCSD에서는 English-In-Action이라는 visiting scholar들에게 일대일로 영어회화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주로 UCSD의 은퇴한 교수님이나 지역주민들이 자원봉사로 tutoring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영어 선생님은 푸근한 흑인 아주머니신데, 매주 UCSD 캠퍼스에서 만나 영어회화공부 겸 미국문화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선배님들의 조언대로 저도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서 방학이나 휴일에 맞추어 주변을 비롯하여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은 국립공원 Annual pass가 공짜라서 저희도 공짜 pass를 받아 가능한 많은 국립공원 여행을 하려고 합니다. 또 각 국립공원마다 Junior Ranger 프로그램이 있어 아이들이 직접 참여한 후 국립공원 이름이 새겨진 멋진 뱃지도 받을 수 있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이곳에 오기전에는 COVID-19 시국에 연수를 가도 괜찮을지 걱정을 하였지만, 와서 보니 오히려 어디를 가도 관광객이 적고, 또 한국과는 달리 아이들 학교는 매일 정상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 같았으면 외국에서 온 관광객이 북적이었을 유명 관광지에는 주로 현지인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주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사회생활이 제한되어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이곳의 COVID-19 상황은 뉴스에 나오는 미국 전역의 상황에 비해서 훨씬 안정적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San Diego가 New York이나 Los Angeles 같은 큰 도시가 아니다 보니 그런 곳보다 COVID-19 유행이 덜 심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외국에 정착하는 것에 약간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은 잘 적응하여 온 가족이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 COVID-19로 인해 저희 국립중앙의료원을 비롯하여 한국에 계신 많은 선생님들께서 고생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에 송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남은 연수기간동안 건강히 지내다 가겠습니다. 두서 없는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