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NEJM





전남의대 화순전남대병원 내과

강 호 철



취미의 결과물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때 얻는 기쁨과 성취감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취미가 사진인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있었기에 이야기하고자 한다.

2004년은 나에게 도전의 해였다. 교수로 임용되어 겨우 3년째인데 새롭게 개원하는 화순전남대병원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갑상선을 좋아하니 암전문 병원이 나에게 더 적합할 것이라는 것이 과 내의 컨센서스(?)였다. 개원 초기 700 병상급 병원에 내분비 교수가 나 혼자였으니, 젊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많은 임상업무를 처리했겠는가? 구름에도 빛나는 은테가 있듯이 고난과 함께 행운도 찾아왔다. 2004년 6월, 발의 통증과 변색을 호소하는 당뇨병 환자가 찾아왔다. 신체검사 도중 통증을 호소하는 발이 무척 빨갛고, 환자를 눕히니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였다. 양발의 색조 차이가 매우 심했고, 의과대학 시절 어디에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에, 일단 사진을 찍어 두었다. 말초혈관질환에서 혈관 폐쇄가 너무 심하면, 말초부위의 혈관확장으로 중력이 가해질 때 역설적인 발적이 보일 수 있는 Buerger sign이었다. 이후, 이 사진은 임상실습 교육용으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는데, 혈관 중재시술 후 호전된 경과를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진이 NEJM에 투고된 것은 2006년 7월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 갑자기 다수의 의사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NEJM 편집장은 장고의 시간을 보낸 후 다음 해 5월 채택 이메일을 보내주었고, 2007년 11월 출판되었다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icm064659). 이 사진들은 독일 의학신문에 재출판되었고, 몇몇 교과서에서도 인용되고 있어 의학교육에 그 역할을 하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

NEJM과 내 사진이 얽히게 된 두번째 사건은 의학과 관련 없는 두 장의 사진이 연속으로 filler photographs (논문 빈 지면을 채워주는 사진)에 출판되었던 것인데, 독자들의 참여가 많아 채택률이 7%인 것을 고려하면 대단한 행운이라 할 수 있다. 2016년 8월 출판된 석양에 드리운 적란운의 그림자(sky shadow) 사진은(Fig 1) 보통 때와 다른 노을 빛이 내 연구실 창문으로 드리웠기 때문에 촬영할 수 있었고(난 어린왕자는 아니며 슬프지 않더라도 매일 해가 지는 것을 본다. 연구실이 서향이기 때문에), 2017년 5월 출판된 방아깨비(long-headed toothpick grasshopper) 사진은(Fig 2) 근무처가 숲과 가깝기 때문이었다. 2005년 사진에 대한 열정이 넘치던 시절 촬영된 방아깨비 사진은 갑상선 안구병증를 주제로 강의할 때 청중의 집중 유도를 위해 평소 이용했던 사진인데, 갑상선안구병증 치료제인 teprotumumab 2상 연구 논문의 마지막 빈자리를 채우는 사진으로 NEJM 인쇄본에 출판되었다. NEJM 편집장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더니 조금 놀랍기도 했다.

NEJM에 출판된 사진들은 모두 내가 일하는 병원의 진료실, 연구실, 그리고 병원의 치유의 숲에서 촬영되었다. 동화 파랑새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우리들이 갈구하는 것은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진도 낯선 곳보다는 익숙한 곳에서 좋은 사진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그 시공간에 오랜 시간 머물고 있어 변화하는 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며, 주어진 시공간의 한순간을 도려내는 작업이다. 피사체를 멋진 구도로 프레임에 담아 알맞은 빛의 양으로 초점을 맞춰 흔들리지 않게 담아내면 된다. 물론, 이 과정은 사진기 조작에 대한 노출, 심도, 초점, 촬영 앵글, 프레이밍에 대한 모든 이해가 이루어진 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일상이 사진이며, 소통의 수단이 사진인 세상에 기록 목적 이상의 사진을 얻고 싶다면 사진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필수이다. 촬영의 결과물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사진은 사진을 더 쉽게 배우게 한다. 조리개, 셔터속도, 감도, 그리고 빛의 방향 조절 등이 만든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고, 부담 없이 재촬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상하부-뇌하수체-갑상선 축에서 예민한 되먹임 조절기전처럼 말이다.

사진기가 좋으면 명작을 남길 수 있을까? 내 의견은 “그럴 확률이 약간은 높아진다”정도이다. 사진에는 촬영자의 심성이 그대로 반영된다. 마음에 없는 사진이 찍힐 수 없는 것이다. 본격적인 취미생활 이후 촬영한 사진이 컴퓨터 하드디스크 공간을 3 테라바이트 차지하고 있지만, 이 셀 수 없는 사진들 중 마음에 들거나, NEJM에 출판된 사진을 포함해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던 작품들은 모두 초창기 사진들이다. 지금은 더 빠른 카메라와 더 고급스러운 렌즈를 사용하지만 좋은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다. 코로나 우울증이란 변명보다는 열정 상실이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젊음과 열정이 넘치며 내가 가진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유한 후배들에게 특별히 이야기하고 싶다. 행운이란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기회라는 것을. 카르티에 브레송이 이야기했던 ‘결정적인 순간’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좋은 사진을 촬영하고 싶다면 심성을 탁마하고 도구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평소에 해 둘 일이다.

의사로서 사진을 이해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중 연구와 강의에 실리는 엄청난 자신감도 부수적 선물이다. 자신의 사진으로 이야기해보라. 그 사진이 찍힌 시공간의 상황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어 자신 있고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타인의 사진이 아닌 자신의 사진으로 이야기해보라!


Fig 1.


Fig 2.